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 드 뤼지냥 (문단 편집) === [[하틴 전투]]에서의 패배(1187) === 하지만 왕위에 오른 기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으니, [[살라흐 앗 딘]]과의 전쟁이었다. 1186년 말에서 1187년 초, 르노의 샤티옹은 또다시 협정을 어기고, 이슬람 상인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이때 샤티옹이 살라딘의 누이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당시에도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살해당하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대노한 살라딘이 협정 위반이라며 기에게 항의했고, 기는 샤티옹에게 상인들과 물품을 반환하라 명령했지만, 샤티옹은 '내 땅에선 내가 주인이고, 살라딘과 휴전 협정을 맺은 것은 내가 아니다'며 거부했다. 이로 인해 르노와 살라딘은 서로 전쟁상태로 돌입했고, 1187년 봄 지하드를 선포한 살라딘은 르노의 영지를 향해 진군했다. 당시 살라흐 앗 딘과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는 아직 전쟁상태가 아니었으므로, 살라딘은 기존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자신의 부대가 그의 영토를 통과하게 허가할 것을 요청했다. 양자간의 전쟁을 막고 싶었던 레몽이 일단 살라딘에게는 자신의 영지를 통행하게 해주는 동시에, 기독교 영주들에게는 살라딘의 군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렸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성요한기사단과 성전기사단이 크레송에서 살라딘의 대군을 습격하다 오히려 학살당했다. 이제 전면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을 깨달은 레몽은 결국 기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7월에 접어들자 살라딘은 레몽의 영토인 티베리아스를 포위하지만, 레몽은 여전히 신중하게 전투할 것을 건의했고, 크레송에서 기사단장을 잃은 요한 기사단도 동의했다. 하지만 샤티옹과 크레송에서 혼자 도망쳐(...) 살아온 성전 기사단장 리드포트는 레몽이 적과 내통한다며 비난하고, 즉시 살라딘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사실 기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작중 [[하틴 전투]] 직전에 열린 회의에서 당장 이교도들을 치러 나서자는 기와 다른 기사들에게 [[이벨린의 발리앙|발리앙]]이 지금 전쟁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며 말린다. 이때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 즉 티베리아스는 '''내 기사단은 이번 전투에서 빠지겠다'''고 하며 막사를 나가 버린다. 기 드 뤼지냥은 "그럼 전공은 모두 내 차지로군"이라면서 비웃지만...]와 달리 상당히 고민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전에 벌어진 케락 포위전에서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권력을 잃을 뻔 했기 때문인지, 이번엔 샤티용과 리드포드의 주장에 동의하여 [[살라흐 앗 딘]]에 맞섰다. 그러나 [[하틴 전투]]에서 무리하게 진군하다 전 병력을 대차게 말아먹고 포로로 잡혔으며 [[다마스쿠스]]로 압송되었다. 르노는 살라딘이 친히 참수했으나,[* 르노는 이슬람 세력에게 붙잡혀 17년 동안 포로로 붙잡혀 있었던 일 때문에 [[무슬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다녔다. 관대함으로 유명한 살라딘이라도 안 죽이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기는 목숨만은 건지고 투옥되었고 이듬해 이슬람에 적대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풀려났다. 한편 레몽은 잔여병력을 이끌고 결사적으로 전장을 탈출했으나,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 사이 [[이벨린의 발리앙]], 몬페라토의 코라도 등 남은 기사들이 [[X]] 빠지게 고생해서 왕국 전체가 공중분해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은 어쩔 수 없이 넘겨주었지만. [[하틴 전투]]에서의 참패로 [[예루살렘 왕국]]의 영지는 사실상 [[티레]] 한 곳 밖에 남지 않게 되버린다. 하틴 전투의 소식을 들은 [[교황]] [[우르바노 3세]]가 뒷골 잡고 쓰러진 뒤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